백성문 변호사 사망 원인, 향년나이
백성문 변호사 사망 원인
백성문 변호사 별세, 향년나이
백성문 변호사는 2025년 10월 31일 새벽 2시 8분경,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암 투병 끝에 향년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월 2일 오전 7시, 장지는 용인공원 혹은 용인 아너스톤으로 알려졌다. 그의 별세 소식은 법조계와 방송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깊은 슬픔을 불러일으켰다.
백성문 변호사 사망 원인은 희귀암실환으로 알려졌다. 투병 경과에 대해 알려진 바로는 희귀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지속해왔으며, 치료 과정 중 한쪽 눈이 영향을 받는 등 신체적 고통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송 및 법률 활동을 완전히 멈추지 않고, 컨디션이 허락하는 한 현장에 나서며 ‘끝까지 목소리를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이러한 태도는 동료 및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학력과 법조 경력
백성문 변호사는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고려대학교 법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2010년부터 변호사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법무법인 청목·준경·정향을 순차적으로 거쳐 2019년부터 법무법인 아리율의 대표변호사로 재직했으며, 동시에 서울지방변호사회 조기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법률 조정 분야에도 기여했다. 또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숭실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 이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방송작가협회의 고문변호사로도 2013년부터 활동해 방송과 법률을 잇는 가교 역할을 맡았다.
그가 법률 전문가로서 쌓아온 경력은 매우 다채로웠다. 형사 전문 변호사로서 다수의 사건을 맡아온 그는 법리적 해석과 사건 대응에 있어 실무 중심의 전문성을 갖췄으며, 법률 조정과 중재 분야에도 힘을 쏟았다. 또한 학계에서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며 법률인으로서의 깊이를 더했다. 이처럼 그는 단순히 변호 업무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법률 지식의 보급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궤적을 남겼다.
방송 활동 및 대중과의 소통
백성문 변호사는 방송 출연을 통해 일반 대중과 법률·사회 이슈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MBN 『뉴스파이터』, JTBC 『사건반장』, YTN 및 연합뉴스TV 등 여러 시사 프로그램에서 고정 패널로 모습을 드러내며 법률적 사안을 쉽게 풀어 설명했다. 유튜브 정치 토크쇼 『정치왓수다』 등에 출연하며 신매체 채널에서도 활발히 활동했고, 이러한 접근은 일반인들이 법률과 사회 현안을 접하는 데 있어 거리감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그의 방송 출연 태도는 ‘정확하면서도 친근한 해설’로 평가되었다. 그는 복잡한 법리나 시사적 쟁점을 쉬운 언어로 풀어냈고,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했다. 이러한 방식 덕분에 법률 전문가로서만의 영역이 아니라 대중에게 다가가는 해설가로서의 인식도 공고히 했다. 특히 다수의 형사 사건·사회 사건을 다루면서도 논리와 인간미를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혼 및 배우자 김선영 아나운서
백성문 변호사는 2019년 11월 YTN 아나운서 김선영과 결혼했다. 김선영 아나운서는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해 언어와 문학에 대한 감각을 갖추었고, 2003년 YTN 공채 8기로 입사해 뉴스 진행 및 기자 활동을 이어온 방송인이다. 두 사람은 방송과 사회적 현장을 공유하며 서로의 가치관과 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결혼에 이르렀다.
투병 기간 동안 김선영 아나운서는 남편을 ‘스트롱 맨(strong man)’이라는 해시태그로 응원하며 변함없이 곁을 지켜왔다. SNS에서는 “남편은 물 한 모금도 못 삼키는 고통 속에서도 와이프 끼니를 챙기던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회상문이 올라오기도 했다. 결혼 10주년에 함께 찍은 사진과 메시지에는 ‘이 생일을 맞이할 수 없다는 두려움마저 있었던 힘든 투병 과정이었지만 잘 버티고 있다’는 글귀가 담기기도 했다. 이러한 기록은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부부를 넘어 서로의 삶과 고난을 함께한 동반자였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기여와 유산
백성문 변호사의 사회적 기여는 여러 측면으로 나타난다. 우선 형사 분쟁, 재난·사고 대응, 미성년자 문제, 기업 분쟁 등 여러 분야에서 변호사로서 공정한 법 집행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힘썼다. 그의 실무 경험을 통해 법률서비스의 대중화와 접근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또 학계 강의를 통해 후배 변호사 양성에도 기여했고, 방송에서는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법률 해설을 제공하며 법과 사회 문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기여했다.
이를 통해 그는 ‘법은 제재의 수단이 아니라 공존의 언어’라는 소신을 드러냈고, 법조인으로서만이 아닌 시민과 마주하는 존재로서의 모습을 갖췄다. 또한 그가 남긴 것은 단순한 경력뿐 아니라 ‘현장에서 시민과 마주하며 책임을 다한 전문가’라는 기억이다. 법률과 방송을 넘나들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그의 삶은 향후에도 법조계, 방송계, 일반 대중 사이에서 회자될 것이다.
기억해야 할 메시지
백성문 변호사의 삶에서 주목할 부분은 전문성과 인간성의 균형이었다. 그는 법률의 복잡한 구조 속에서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해설을 제공했고, 동시에 형사 전문 변호사로서 어려운 사건들에 직접 임했다. 투병 중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은 태도는 그가 가진 사명감을 드러낸다. 결혼 생활에서는 배우자와의 신뢰와 격려 속에서 함께 고난을 견뎌냈고, 이는 두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남긴 말 중 하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업투병과 전업간병 중인 우리 부부, 잘 이겨낼게요. 너무 소중한 와이프, 미안하고 고맙고 또 행복하고 사랑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단지 변호인이나 해설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랑과 책임을 다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의 유산은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사람을 향한 법률과 언론의 소통’이라는 가치이다.
결론
백성문 변호사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학창시절부터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제49회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법률인으로서의 시작이 있었고, 이후 형사 전문 변호사로서의 활동과 방송 패널로서의 대중적 소통이 이어졌다. 배우자 김선영 아나운서와 결혼하여 함께 삶을 꾸려간 시간도 있었으며, 암 투병이라는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현장을 향해 나아갔다. 그의 별세는 너무 이른 타이밍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그가 남긴 열정과 책임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의 삶은 단순히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전문성과 인간성의 결합,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위한 행동’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법조인으로서, 방송인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겹쳐지는 그 여정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남은 시간 동안 그의 열정과 신념이 기억되기를 바라며, 법과 사회를 연결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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