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견만리 피터 언더우드 원한석. h. 언더우드 선교사 4대손. 125년째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인의 혼을 가진 미국인.

언젠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명견만리에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쓰는 노년의 푸른 눈의 외국인 강사를 보았다.
더빙인가?
의아할 정도였다.
발음은 외국인의 발음이었지만 그가 구사하는 어휘는 한국에서 40년을 산 나보다 뛰어났다.
도대체 저 푸른 눈의 이방인은 누구인가?
의아해서 검색해보았다.
한국 이름 원한석.
피터 언더우드.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Horace Grant Underwood , 1859년 7월 1일 ~ 1916년 10월 12일)이다.
호러스 언더우드의 한국 이름은 원두우다.
언더우드라는 영어이름을 한글로 발음 나는데로 이름으로 삼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게 원씨 성을 쓰는 이방인 가문이 생겨났다.
그 언더우드 선교사의 4대손인 피터 언더우드는 원한석이라는 이름으로 125년 넘게 서울을 고향으로 살고 있는 푸른 눈의 한국인이 한국에 대한 전적으로 애정을 담아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같다.
피터 언더우드가 명경만리에서 강연을 하면서 "우리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때 전혀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 더 생경했달까?
그에게 왜 한국에 남았느냐는 질문에 불쾌해하며 4대에 걸쳐 125년 동안 서울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라면서 서울이 자기고향인데 자기더러 어딜 나가라고 하는 질문이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언더우드 가문의 한국사랑.
1세 언더우드 원두우 한국인보디 한국을 더 사랑했고 선교활동으로 방문한 한국에 남아 한국인의 교육을 위해 힘쓰고 연세대학교 재단을 설립. 양화진 성지에 잠들다.
2세 언더우드 원한경 박사. 백두산 천지의 깊이를 재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설계도 복원에 힘쓰다.
3세 언더우드 원일한. 6.25 전쟁에 참여해 한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며 정전 통역관으로 활약.
4세 언더우드 원한광 단장, 원한석 위원 (국가브랜드 위원회)
과연 4대에 걸쳐 이렇게 오롯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할 수 있을까?
피터언더우드. 원한석.
IRC 컨설팅 선임 파트너
퍼스터 무버 저자.
피터언더우드의 아버지는 서울태생 미국인. 어머니는 영국인. 피터언더우드의 아내는 호주인. 딸 캐나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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